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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arto C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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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PUCCINO, 작고 귀엽고 미쳤고

    Holic™ | 2018.11.18 01:01 log


    스즈키 카푸치노를 왜 샀냐고 물어본 사람만 열두 명이 넘는다. 평범한 자동차는 아닌 게 사실이고, 평범하지 않다는 건 별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차가 아니란 뜻이다. A 에서 B로 사람과 물자를 얼마나 실어나를 수 있는가로 자동차를 평가한다면 불과 두 사람과 약간의 짐을 실어나를 수 있는 카푸치노의 효용가치는 한없이 낮다.

     

    하지만 세상 모든 운전자들이 밴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세단을 선택하는 운전자가 더 많다는 것은, '네 사람 정도를 적당한 짐과 함께 실어나를 차'가 필요한 이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겐 카푸치노가 필요하다. A 에서 B로 나 이외의 누군가를 실어나를 필요가 없고, 운전이 노동이 아닌 놀이가 될 수 있는 차를 원했으니까.

     

    이 차를 왜 샀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겐 스즈키 카푸치노의 키를 넘겨준다. 처음에는 '수동 차는 오랫만인데'라며 출발하며 곧바로 시동을 꺼트리고, 주차공간을 벗어나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순간 뒷바퀴에서 턱턱거리며 올라오는 다판식 LSD의 충격에 차가 고장난 게 아닌가 걱정한다. 늘 똑같은 레퍼토리의 반복.

     

    보통 차를 운전하는 감각은 잊으라고 말 해주는 걸 깜빡했다. 1단 기어를 넣고 반클러치를 대며 차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질 때, 다소 과감하게 가속 페달을 밟을 필요가 있다. 일단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땐 가속페달을 놓은 상태로 클러치를 붙여도 시동이 쉽게 꺼지진 않는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 엔진 회전수는 2000rpm근처다.

     


    스즈키 카푸치노의 엔진 배기량은 660cc밖에 안 된다. 당연히 아무도 파워풀한 주행을 기대하지 않는다. 시동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주차공간을 벗어나 도로로 나와 가속페달을 가볍게 밟는 순간 카푸치노는 펀치를 내지르듯 앞으로 튀어나간다. 몸집이 작아도 굉장히 빠르고 민첩한 스프린터다.

     

    탁 트인 도로에서 시원하게 가속하며 엔진 회전수가 4000rpm에 이르기까진 3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오른발을 페달에서 떼면서 왼발로 클러치를 깊이 밟으며 기어를 2단에 넣는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터보차저로부터 여분의 압력이 블로우밸브를 통해 터져나오며 '핏슝'하는 소리가 들린다. 보통 깜짝 놀라면서도 웃음을 터뜨린다. 너무 재미있으니까. 재빨리 2단 기어로 변속을 마치고 rpm이 떨어지기 전 다시 가속페달을 밟으면 마치 부스터를 작동한 것처럼 앞으로 튀어나간다.


    마치 카트를 모는 듯한 감각이지만, 아무렇게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차는 아니다. 이 녀석, 변속기가 수동이다. 적당히 게임 하는 기분으로 클러치를 대충 발로 누르며 시프터를 쥔 손만 재빨리 움직여봤자 변속은 이뤄지지 않고, 엔진만 공회전 하며 운전자의 미숙함을 비웃는다. 어설프게 레이서 놀이가 하고싶다면 그냥 포르테쿱 오토매틱이 낫다. 


    클러치를 끝까지 확실하게 밟으면서 시프터를 움직여야 한다.(수동 좀 몰았다고 자신있게 폼 잡다가 실수 한 사람 누구누구라고 있다...) 정확하고 빠르게, 기어가 들어간 직후 클러치를 붙이며 가속페달을 과감하게 밟아야 한다. 가벼운 플라이휠 덕분에 가속할 땐 rpm이 시원하게 올라가지만 속도가 떨어질 땐 절벽에서 다이빙 하듯 아래로 뚝이다. 변속과 스로틀 조작이 미숙하면 곧바로 차가 앞뒤로 꿀렁거린다. '이 차를 대체 어떻게 몰아야 하지?'라는 당혹감과 함께 여유가 사라진다. 내 얘기다.

     

    카푸치노에 익숙해진다는 건 엔진 회전수가 5000-6000rpm을 넘나드는 걸 예사로 여기게 된다는 뜻이다. 산길 와인딩 코스에 들어 오르막이 시작되면 곧바로 다운시프팅. 낮은 기어비에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가속해야 한다. 언덕에서 변속하지 않고 가속 페달을 밟아봤자 비실대며 4000rpm 이상으로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착각하면 안된다. 카푸치노의 엔진 배기량은 660cc에 불과하다. 파워가 아닌 회전수로 승부하는 엔진이다.

     

    저단기어와 높은 rpm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비로소 토끼가 뜀뛰기를 시작한다. 급커브 경고와 함께 시속 40km/h 정도가 한계라 생각되었던 코너를 48km/h 이상으로 돌면서도 타이어에 여유가 느껴진다. 저중심의 낮은 차체, 단단하게 세팅된 서스펜션. 원심력에 회전하는 바깥으로 슬쩍 쏠리는 느낌이 오더라도 곧바로 자세를 회복하며 안으로 파고든다. 노면의 충격은 고스란히 허리와 등으로 올라오지만 좌우로 크게 요동치지는 않는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대로 곧바로 반응해 뱀처럼 코너 안쪽으로 파고든다. 운전하는 사람은 미치도록 재미있고, 조수석의 동승자는 그냥 환장할 지경이다. 시끄럽지, 충격은 등허리를 때리고 머리가 울리지, 코너에서 속도를 안 줄이니 무섭고 그냥 무조건 이 차가 싫다. 다신 안 타겠단다. 동승했던 동생 얘기다.

     

    운전에 왜 즐거움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에게 스즈키 카푸치노의 가치는 똥이다. 재미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차니까. 하지만 재미만 있으면 된다면 카푸치노는 정말로 보석 같은 차다. 시원하게 뻗는 고회전 엔진, 더블위시본 서스펜션, 앞뒤 5:5의 완벽한 중량 밸런스, 오픈에어링이 가능한 하드탑 컨버터블. 모든 것을 부담없는 가격에 누릴 수 있는 차다. 이런 극단적이고 멋진 장난감이 또 있을까? 이거 자전거 한 대 값 밖에 안 돼....

     

    카푸치노 같은 차를 왜 타냐고 묻지만, 몰아보고나서 칭찬을 아끼는 이는 없었다. 그녀와 왜 사귀기 시작했는지 이유를 물어도, 반하기 전까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감추고 있지만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주진 않는다. 까칠하지만 제법 섹시하다. 그 매력, 나만 알고 있으면 된다.




    친구에게 미소녀 일러스트로 래핑 할 거라 했더니 아픈 차 만들지 말라고 울길래, 훅업 스케이트보드 스티커만 한 장 붙이고 끝냈다. 애초에 이대로 이쁜 차라 래핑 같은 걸 할 생각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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