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parto Corse

  • ETA 7750 VALJOUX, 이 원한을 풀지 않고 배길쏘냐 본문

    ETA 7750 VALJOUX, 이 원한을 풀지 않고 배길쏘냐

    Holic™ | 2018.09.23 19:58 Watch


    시계를 만지다 보면 가장 흔하게 다루게 되는 무브먼트가 ETA 2824 패밀리라고 말한다. 심지어 시계 관련 학과에서 기초 교재로 사용하는 ETA 2824인데, 정작 난 시계를 배우면서 ETA 무브를 접한 횟수는 유독 적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익숙한 무브의 순위를 매긴다면 세이코, 오메가, 론진 순으로 줄을 세워야. 그 외 브랜드로 보면 롤렉스, 에니카, 라도, 부로바, 오리엔트 등등 일본이나 프랑스 및 러시아에서 온 녀석까지... 돌아보니 숫자가 제법 되는구나.


    하지만 최근 수리를 시작한 태그호이어 덕분에, 어느샌가 손가락이 ETA 무브먼트를 익숙하게 기억하기 시작했다. 무브먼트마다 재질이나 촉감, 마감, 나사의 크기와 돌리는 감각 등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데, 대체로 같은 메이커 무브먼트는 익숙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렇게 열심히 만진 ETA 무브먼트가 2824가 아닌 7750 크로노그래프라 그렇지. 그냥 오버홀 정도면 별 거 아닌데, 내 현 상황이 '초등학교 들어와서 남들도 다 하는 줄 알고 열심히 미적분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전에 한 번 수리해서 출고했는데, 다시 문제가 생겨서 돌아온 태그호이어를 맡게 되었다. 무브먼트는 에보슈로 들어간 ETA 7750 VALJOUX. 주인이 '평소에 시계를 살살 다루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건 모르겠고 모든 건 무브먼트가 말 해준다.


    시계를 흔들어 로터가 돌아도 태엽이 안 감기는데, 치차 하나가 판과 축이 분리되어 따로 노는 상태라. 눈으로만 확인해선 알 수 없는 부분. 또, 태엽이 든 배럴을 열어보니 아주 가관이다. 웬 쇳조각이 튀어나오질 않나... 태엽을 뽑아보니 이상 없이 작동은 가능한 상태라, 세척 후 다시 감아 넣고 오일링.



    초침차 축이 살짝 휘었는데, 이 또한 과거 수리한 부분이라고. 동작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니 넘어가자. 당장 큰 문제는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을 정도로 밸런스 휠의 회전각이 안 나오더라. 시계를 얼마나 얌전하게 다루는 사람이기에 무브가 이 모양인진 미스테리. 바닷물 들어가서 녹으로 떡진 세이코 다이버 워치 이래, 이 정도로 맛 간 무브먼트는 참 오랫만이다.


    어떤 경우에도 가장 먼저 의심할 부분은 오염이다. 세척 후 재조립. 밸런스 휠의 회전각은 270도 내외로 잘 나온다. 역시 문제는 오염 때문인가 했는데, 크로노그래프 유닛까지 다 조립하고 나니까 다시 밸런스 휠이 멈춘다... 막판에 이러면 쌍욕 나온다.


    크로노그래프 유닛 분해. 발가벗긴 무브먼트로 테스트하다 보니 패턴이 보인다. 특정 각도로 기울였을 때 정상작동 하고, 특정 각도에선 밸런스 휠의 움직임이 크게 둔해진다. 일단 중력의 영향을 받는 부분이 문제라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도 눈이 닿는 곳에서는 문제를 찾아낼 수 없으니, 결국 새 ETA 7750 무브를 주문했다. 태그호이어의 무브먼트와 1:1로 부품을 바꿔가면서 테스트 하면 답이 나오겠지.



    덕분에 새 무브먼트 하나 중고로 만들었고, ETA 7750은 손가락이 기억하는 가장 익숙한 무브먼트로 자리잡은 건 덤. 덤비는 김에 무브먼트 개조만 빼고 이것저것 테스트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며 놀기. 밸런스 휠은 문제의 범인이 아닌 걸 확인했고, 팔레트 포크가 범인이라는 의혹이 짙었으나 아슬아슬하게 결백을 증명했다.


    그나저나 첨엔 ETA 7750이 원래 이리도 지랄맞은 무브인가 싶었다. 하지만 새 ETA 7750 무브먼트는 안 그렇더라. 6방향 모두 밸런스 휠 회전각도 일정하게 잘 나오고 시간도 너무 잘 맞아. 이렇게 착할 수가! 하지만 왜 맨날 내 손에 들어오는 물건은 특별히 지랄 맞은 녀석만 걸린대?


    아무래도 태그호이어랑 내 궁합이 어지간히 안 좋은가 보다. 이거 말고 오버홀 중인 다른 태그호이어의 ETA 2892 A2 무브먼트도 세척 잘 해서 조립했는데, 기분이 영 쌔~한 게 아무래도...

    'Wa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ETA 7750 VALJOUX, 이 원한을 풀지 않고 배길쏘냐  (0) 2018.09.23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