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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arto C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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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5/16

    Holic™ | 2018.05.17 15:32 Watch

    공방에 얼굴도장 찍은 날이 4월 9일이다.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시계 학교의 커리큘럼은 모르겠다만, 선생님은 무조건 많이 만지고 손에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씀하신다. 커리큘럼은 없지만, 교재는 있다.


    첫 과제는 쿼츠 무브먼트를 완전히 분해했다가 조립하는 것. 시계용 드라이버와 핀셋, 현미경은 선생님이 준비해주셨다. 교재는 세이코와 미요타의 저렴한 쿼츠 무브. 분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조립을 마친 시계가 제대로 안 간다.


    현미경으로 원인을 찾으니 하나는 플라스틱제 치차의 이빨이 나갔다. 아무래도 핀셋으로 잘못 집은 게 원인인 듯. 또 다른 무브먼트는 치차에 이상이 없는데도 안 움직인다. 배터리를 넣으니 로터는 움직이는데 초침은 멈춰있다. 선생님이 드라이버로 플레이트를 이리저리 뒤틀어 보시는데 어느 순간 시침이 움직인다. 말씀하시길, "시계 회사에서도 플레이트 불량은 고칠 생각 안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넌 어쩌다가 이걸 망가트렸냐?"


    무브먼트 홀더를 너무 꽉 죈 게 원인이다. 준비과정일 뿐인데 여기서 벌써 사고가 터진다. 또 다른 무브먼트는 플레이트와 치차 모두 이상 없는데도 안 움직인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머리카락보다 가는 코일이 끊어져 있다. 선생님께서 주신 또 다른 고장난 무브먼트를 포함, 안 움직이는 미요타 무브먼트 세 개를 분해해서 멀쩡한 부품만 모아 조립해 하나 살렸다.


    다음 과제는 론다의 4석 쿼츠 무브먼트 분해 조립. 선생님 말씀, "네가 이 일을 하는 동안 가장 흔하게 볼 쿼츠 무브먼트다." 이 때부터 현미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쓰라고 주신 현미경을 안 쓴 내가 미련한 놈이라. 맨 눈으로도 무브먼트 분해는 할 수 있는데, 손상 없이 제대로 하려면 현미경이 필수다. 부품에 상처를 내지 않는 것이 기본인데, 기본도 없는 실력으로 시계를 만지면 고장 나는게 당연하다.


    분해한 무브먼트를 1시간 내로 조립을 마치면 맛난 저녁 밥 사주신다고. 구조가 복잡하지 않아 금방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로터가 자리를 못 잡는다. 안에 든 게 자석이라 사방으로 움직이며 여기저기 붙어 치차의 축을 흔들어 놓는다. 커버를 덮을 때 축이 제 자리를 못 잡는다. 결국 1시간 내 조립은 실패했다. 선생님이 조립하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니, 코일과 회로를 조립하기 전에 치차부터 조립하신다. 회로가 없으니, 치차를 덮은 커버 측면의 틈으로 건드려 위치를 조절할 수 있다. 핀셋 말고 샤프심을 뽑아 안쪽을 건드려가며 금방 조립하시더라. 또 다른 금속제 부품이 결합 된 상태에선 로터의 자력이 분산되는지 다루기가 조금 더 수월해진다.


    다음은 중국산 기계식 무브먼트다. 모델은 불명. 역시 분해 조립이 과제. 무사히 분해했고, 조립도 문제 없이 잘 한 줄 알았는데, 나사 세 개만 조이면 끝날 상황에서 나사 하나를 밸런스 휠 안쪽에 빠트렸다. 작동은 잘 하는 상태였는데, 안에 핀셋을 넣을 수 없다. 사실 조립의 실수가 있었는데 이 때는 몰랐다.


    무브먼트 2차 분해 후 재조립, 그런데 밸런스 휠의 보석까지 분해했다가 조립하면서 고정 클립을 부러트렸다. 자신만만하면 사고를 친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클립만 부러트린 게 아니라 그 위를 덮는 보석도 분실된 상태라고. 클립을 교체하고 보석을 넣어서 무브먼트를 살렸다. 또 한가지, 나는 동력원을 제거 할 생각에 태엽통부터 뺐는데, 기계식 무브먼트는 밸런스 휠과 팔레트 포크부터 분해해야 한다. 가장 약하고 쉽게 망가질 수 있는 부위고, 자칫 작업 하면서 충격으로 망가질 수 있다. 물론 분해 전 태엽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게 기본이다. 태엽의 역회전을 막는 장치는 분명 어디엔가 숨어있으니 찾아서 눌러주면 된다. 안 보인다고 대충 넘어갔다간, 분해하다가 치차들이 사방으로 펑... 당연히 이것도 다 경험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중국산 기계식 무브먼트. 분해했다가 여러 치차들의 원래 위치를 기억해서 조립하는 게 쉽지 않다. 구조와 작동원리를 생각하면서 치차를 이리저리 배치해보고 결국 맞는 위치를 찾긴 했다. 그리고 커버를 덮는데,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일단 커버를 덮어 가고정해놓고, 안에 핀셋을 넣어 맞지 않는 치차를 움직여 조절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커버를 고정하는 나사를 돌리다가 안에서 뚝 하는 느낌. 뭔지 몰라도 사고 친 건 분명하다. 일단 조립은 되었는데, 당연히 시침은 안 움직인다. 거미발모양 이스케이프먼트 휠의 축이 흔들린다. 무리하게 눌렀더니 축의 끝부분 발톱이 부러져 날아갔다. 사고 치를 치더라도 그 방식이 매번 다르고 새로우니, 나날이 성장한다. 이런 미칠...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손 끝에 '제대로 조립 된' 감이 온다. 치차들을 제 위치에 놓는 것은 원리를 생각하면 금방 구조가 보인다. 이제는 분해 전에 사진을 미리 안 찍어놔도 다시 조립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부품이 정확한 위치에 잘 위치한 상태라면 조립도 당연히 잘 된다. 또 치차들을 제 위치에 놓는 것 뿐 아니라 치차의 이빨들이 서로 잘 맞물린 상태일때, 치차들이 서로를 지지하면서 꼿꼿하게 잘 서있는 상태가 된다. 이때 커버를 조용히 덮어주면 치차의 축이 커버의 홈에 깔끔하게 맞물린다. 시계를 조립할 때는 힘을 줘서 무리해서 끼워넣을 부품이 단 하나도 없다. 조립이 완벽하지 않으면 불량이다.


    그 외의 실수들, 조립 중 나사와 스프링 날리기. 작업 할 때는 주변을 정리하고 반드시 작업대 앞 서랍을 꺼내 팔꿈치를 받친다. 부품이 몸 앞쪽에 떨어지더라도 반드시 서랍 위로 떨어져 받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지금 사용하는 작업용 책상이 그렇게 디자인 되었다. 부품을 잃어버리면 다른 대체용 부품을 찾기보다 끝까지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 말씀이다. 정 못 찾아서 다른 부품으로 대체하거나 새로 만들 수도 있지만, 잃어버린 원래의 부품을 찾는 것은 작업자의 성실한 태도와 관련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무브먼트를 만지면서 스프링이나 나사가 튕겨 날아간 것이 수 십 번이다. 하지만 한 번도 부품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품이 튕겨 날아갈 여지가 있다면 풀기 전에 단단히 핀셋으로 붙잡거나 눌러서 대비하고, 그럼에도 튕겨져 날아갈 것에 대비해 손바닥으로 감싸고 작업을 진행하거나 다른 대처를 미리 한다. 이런 방법을 머리로 기억하더라도 작업하는 동안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평소의 습관대로 몸에 배기 시작하면서 실수가 줄어든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더욱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드라이버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나사머리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작업을 서두르면서 나사를 빠르게 돌려 죌 생각은 안 하는 게 낫다. 그냥 1/8바퀴씩, 조금씩 돌리더라도 미끄러지지 않게 아주 조심조심. 선생님은 일을 빠르게 하는 것을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선생님의 작업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다음으로 캘린더와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있는 시계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크로노그래프를 사용할 줄 모르니 뜯어봐도 작동 원리를 잘 모르겠다. 멀쩡한 시계로 이리저리 갖고 놀아보니 사용법과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복잡한 구조만큼 조립은 힘들다.


    캘린더는 비교적 간단하다. 다만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부드럽게 잘 작동하거나 혹은 뻑뻑하거나 차이가 난다. 특히 캘린더를 조립하면서 스프링을 많이 다루게 된다. 스프링을 조립한 상태에서 장력이 균형을 이루며 부품이 제 위치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플레이트를 덮어 부품이 제 위치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고정한 다음에 스프링을 틈새로 밀어 넣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관찰이 가장 중요하다. 시계의 구조를 생각하며 방법을 찾는다. 어차피 시계는 사람이 핀셋으로 조립한 물건이다. 방법을 알면 내가 손으로 조립하지 못 할 까닭이 없다.


    선생님께선 물어보기 전에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신다. 과제를 주시며 잘 관찰하고 알아서 해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다 보니 시계를 뜯고 조립하는 중 사고를 치고 나서야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사고가 터지는 시점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다음에 다시 선생님께 방법을 여쭈면, 더 좋은 답을 알려주신다.


    한 2주간 '심플한' 기계식 무브먼트를 갖고 놀면서 익숙해지니 오래된 시계들을 몇 십 개 주시면서 뜯어보라 하셨다. 지금까지는 무브먼트만 만졌으니, 이젠 시계에서 무브먼트를 꺼내는 것을 연구하라는 말씀이렸다.


    시계의 무브먼트를 다루는 것에 비해 바늘을 끼우고 뽑는 것은 쉬운 작업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확하게 바늘을 끼우기가 쉽지 않다. 아니, 바늘과 문자반에 손상을 주지 않고 작업하는것만 해도 꽤나 긴장되는 작업이다. 일단 시계 뚜껑을 열면 바늘과 문자반부터 분해하고 무브먼트를 만진다. 문자반 분해가 귀찮다고 그대로 무브먼트 홀더에 걸었다가는, 문자반이 휘어진다. 문자반에는 절대 힘을 가해서는 안 된다. 기초 중의 기초인데 이걸 실수하면서 배우고 있다.


    뽑은 바늘을 손상 없이 깔끔하게 다시 끼우는 것은 무브먼트 분해 조립보다 어렵다. 일단 할 수 있는 것과 부담없이 만지는 건 다른 영역이다. 아직은 무브먼트 분해 쪽이 익숙한 탓인지 더 쉽다. 그런데 선생님이 바늘을 빼거나 꼽을 때도 사용하는 전용 공구가 있다고 알려주신다. 이걸 전용 공구 대신 핀셋으로 하려 했으니 그리 어려웠던 것인가? 하지만 선생님은 다 핀셋으로 작업하신다. 그러니 나도 핀셋으로 작업하되, 핀셋을 도와줄 도구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비비빅 먹고 남은 나무막대를 깎아서 적당히 가공하고, 중심에 구멍 하나를 뚫었다. 꽤 쓰기 편하다.


    이번에는 크로노그래프의 작은 바늘을 뽑다가 바늘을 망가트렸다. 치차와 결합되는 튜브가 바늘에서 뽑혀나와 분리되었다. 바늘이 완전히 망가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고칠 수 없는 것은 부품은없으니 수리해보라고 말씀하신다. 길이 0.5미리, 직경 0.2미리 정도 되는 바늘 뿌리를 핀셋으로 집어 구멍에 끼운다. 의외로 어렵지 않다. 핀셋 다루는 것에 좀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 바늘과 문자반을 다루는 것이 슬슬 익숙해진다. 캘린더도 만지다 보니 내부 구조를 외우게 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계를 분해했다가 조립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은 새 시계를 분해조립하는 것보다 어렵지만, 작업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무브먼트 다루는 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방심하다 사고를 쳤다.. 70년대 오리엔트 시계에 들어있던 무브먼튼데, 오리엔트라 각인되어 있지만 프랑스제 무브먼트라고. 어디에도 프랑스라고 적혀있지 않지만, 무브먼트가 만들어진 지역에 따른 스타일이 녹아있다고 한다. 조립의 마지막 단계에서 밸런스 휠을 떨어트렸는데, 핀셋 끝에 헤어스프링이 걸렸다. 스프링이 뽑혀나오고 꺾였다. 뽑힌 스프링을 집어넣어도 꺾인 부분이 있으니 밸런스 휠의 전체 방향이 틀어지고 조립이 제대로 안 된다.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밸런스 휠에서 유사, 즉 헤어스프링을 분리해 핀셋으로 집어가며 펴신다. 더 섬세하게 작업해 복구할 수 있지만 점심 약속이 있으니 일단 작동만 문제없도록 하셨다고. 작업 시간은 한 5분 걸렸다. 쉬워 보이지만, 이 유사를 쉽게 다룰 수 있는 기술자는 국내에 몇 없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나는 이걸 맘대로 다룰 수 있도록 계속 연습 해야겠다 싶다.


    오리엔트 무브먼트는 오래된 탓인지 치차에 푸르스름한 녹이 났다. 유리섬유를 사용한 샤프펜슬 형태의 솔을 주셨다. 두 개 있으니 하나 쓰라고. 문지르니 녹이 닦인다. 노란 색 금속 표면이 금색으로 변한다. 섬유를 길게 뽑아서 쓰는데, 이 솔은 섬유를 짧게 뽑아서 사용 해야 한다고. 길게 뽑으면 쉽게 부러진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니 부러진 유리섬유들 투성이다. 그리고 반드시 아주 살살 문질러야 한다고. 기억해두자. 어쨌거나 이젠 녹 슨 부품을 그대로 조립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다.


    낡은 무브먼트를 원래 성능에 가깝게 닦고 정비하면서 보람을 느낀다. 물론 단순한 싸구려 무브먼트를 만지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내가 자전거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 10년 넘은 낡은 생활자전거를 완전 분해해서 뚝딱거리며 고치던 것과 비슷하다. 그 때는 베어링 구슬 하나까지 분해해서 닦았고, 그렇게 키운 실력은 고급 자전거 정비에도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이왕이면 공부하면서 더 많은 기록을 제대로 남기고 싶다. 아이폰7 사진도 꽤 해상도가 높은데, 흔들림 없이 구도 잡기가 어렵다. 한 손으로 제대로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D800으로 촬영하기 위해 현미경의 접안렌즈 직경에 맞춰 카메라 어댑터를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또 배운다. 시중에 판매되는 현미경용 카메라 마운트는 M43(MFT) 스크류마운트다. 이 M43 마운트를 F마운트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어댑터가 필요하다. M43-30mm 마운트를 어댑터를 통해 카메라에 장착하면 접안렌즈를 빼고 D800으로 촬영할 수 있다. 영상 촬영도 가능하니, 앞으로 가능한 많은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무엇보다 시계는 꽤나 매력적인 피사체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고해상도의 노예일 뿐이고.


    거의 한 달 동안을 돌아봤지만, 하루하루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끔 대충 넘어가고 싶은 작업도 있다. 쿼츠 무브 로터 조립 같은. 그래서 어려우니 대충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무심코라도 들면, 일부러 그 작업은 두 번을 반복했다. 다 조립한 것 풀어서 다시 조립하고. 그러니 무심코라도 대충 하고 싶단 생각이 사라지더라. 물론 속으로는 나한테 욕 많이 했다. "이 미친놈아, 고생해서 겨우 조립해놓고 이 짓을 또 하라고?" 응.


    한 달 간 제 정신으로 살아온 것 같진 않은데, 그런데도 하루하루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2년만 버텨보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래도 모자라면 더 하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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